01.
원래 삶이라는 게 하루는 천국이고 하루는 지옥이었다가 하루는 천국과 지옥 그 어느 사이쯤에 끼어있는 기분이 드는 날들의 연속 아니겠는가. 물론 나의 매일들은 천국과 지옥 그 어느 사이쯤에서 그다지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경우들이 대부분이지만, 가끔은 스스로 너무 보잘것없어서 당장이라도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은 날이 찾아오기도 한다.
02.
최악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썩 유쾌하지 않은 일은 많은 경우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제3자와 나 사이의 비교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 그렇다. 보통의 평범한 나날의 보내던 내가 이다지도 수면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은 건, 이번엔 타의에 의한 비교 때문이다.
03.
비교의 대상이 되는 주제는 한도 끝도 없겠지만, 이번엔 직장과 결혼이었다.
04.
스스로가 하는 일에 만족하고 재미도 느낀다. 벌이가 들쭉날쭉하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1년치, 그러니까 연봉으로 계산해 보면 적당히 먹고사는 것에 문제가 없을 만큼 돈도 번다. 하지만 고무원(a.k.a 철밥통)이 아니라는 이유로 나는 요즘 같은 경제 상황이면 늘 내 직업에 대해 후려침을 당해야 한다는 게 문제다.
05.
대기업이나 공사에 취업하지 못한 것이 죄고 꽤 오랫동안 공부했던 공무원 준비를 실패로 끝낸것이 죄라면 죄라지만, 꼭 그 길만이 답이었을까? 모르겠다. 지금이라도 당장 마음을 다잡고 공무원 준비를 시작할 수는 있겠지만, 합격은 별개의 이야기라는 것을 나는 오랜 경험을 통해 누구보다 잘 안다. 너도나도 죽겠다는 불경기에 지금이라도 공부해서 9급 공무원, 7급 공무원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는 타인의 신세 섞인 한탄은 언제나 현재의 나를 좀먹는다.
06.
결혼 역시 내겐 꽤 복잡하고 어려운 주제다. 내 가정을 꾸려한다는 것에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그 자체로서 공포와 귀찮음을 느낀다. 워낙 오래 혼자 지내서 그런가 혼자가 편하다. 동성 친구와의 동거를 꽤 오래 해서 타인과 한 집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도 잘 안다. 자녀가 태어난다는 건 매우 축복받은 일이지만, 아이들은 알아서 큰다는 고릿적 개소리를 믿지 않으면서도 자녀를 훌륭히 키워낼 자신이 없다. 이처럼 정작 당사자는 아무런 준비도 안된 상황에서 기대되고 강요되는 결혼은 폭력적이다. 나는 부모님 지인의 자녀들 중 누군가가 결혼을 할 때마다 원인 모를 죄책감을 느껴야 하고 조급증과 패배감을 느껴야 한다. 참으로 폭력적이다.
07.
뭐, 무거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자. 어차피 나는 이번 주말을 지내고 나면 또 언제 지옥불에 떨어져 있었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생활할 것이다. 다 극복하고 괜찮아졌다기보다는,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고 잊히기 때문이다.
08.
주말 양일 모두 약속을 잡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사람을 만나며 가득 쳐진 기분을 되살려 보겠다는 의도보다는 새로운 자극을 받아 덧씌우겠다는 의도가 더 짙은 이벤트지만, 결과적으로 나를 마이너스에서 제로베이스로 끌어올려줄 정도면 될 것이다. 충분하다.
09.
11월 첫날부터 여기저기서 블랙프라이데이니 쓱데이니 브랜드데이니 하며 할인행사 알람이 쏟아지는 것을 보고, 아 정말 1년을 마무리할 때가 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자주 쓰는 제품들의 검색하고 가격을 비교해 가며 이곳저곳에서 주문을 하고 나니 오늘 하루 만에 꽤 큰돈을 쓴 것 같다. 한동안은 신용 카드의 존재를 잊고 살아야겠다 싶다.
10.
11월의 첫 날 남기는 글이 꽤 무겁고 어두워졌지만, 그래도 주절주절 늘어놓다 보니 마음이 좀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오늘도 무사히. 그리고 오늘은 퇴근 후 맛있는 저녁을 해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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